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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의 남구 도로명 길 이야기

고사로

옛날 울주군 온산읍 [회학(回鶴)]에 김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나이 많은 부모가 살고 있었는데 늘 걱정이 되는 것은 명당자리를 구해 돌아가실 부모의 유택(무덤)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상주가 되었는데 마침 집 앞으로 성지(性智, 타고난 지혜를 지닌 성인)가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상가에 들여 놓았다. 마침 상주들이 모여 앉아 유택을 마련할 궁리를 하고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성지는 도움을 줘도 괜찮겠느냐고 묻자 상주들이 매우 환영하여 상주들이 소유하고 있던 산으로 안내했다. 그곳이 [대현면][구미동(九尾洞)], 즉 지금의 남구 고사동이었다. 산세를 돌아보던 성지가 상주들이 소원하는 바를 묻자, 그들은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산세는 뱀이 굽이치며 북쪽에서 내려와서 바다 건너의 개구리를 잡으려는 형국이었다. 마침 바다 건너 [매호동(梅湖洞)], 즉 지금의 매암동의 [개구리섬(納島)]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성지가 한 곳에 묘 터를 골라 주면서 3일만에 천 석(石)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니 명심하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김씨는 3년도 아니고 3일만에 천 석의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어느덧 삼우제(장례치른 후3일째 되는 첫번째 성묘)날이 되어 산소를 둘러보게 되었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장승개], 즉 지금의 [장생포]앞바다에 큰 청어떼가 곤두박질을 치며 빙빙 돌더니 그 무리들이 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뭍으로 치밀려 왔다. 이 청어를 팔아서 백 석 정도의 논을 소유하게 되었다. 후세사람들은 이곳을 [흥성구만]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정유공장 부지에 편입되어 과연 [흥성구만]의 지명에 걸맞게 9만 석을 할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1962년 SK울산공장에 편입되어 옛 지형이 사라졌다.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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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업데이트: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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