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남구


홈남구소개 > 남구역사 > 염전
남구소개 > 남구역사 > 염전

염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울산광역시 남구는 울산지역 소금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남구지역의 소금 생산지를 살펴보면 삼산동 일대의 삼산염전, 태화강하구 일대의 합도염전, 외황강 일대의 마채염전 등이다. 조선시대와 근대까지의 산업의 근간으로 오랜 세월 울산사람들과 함께해 왔지만 울산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가치조차 평가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동안 울산의 소금산업에 대한 자료는 체계적으로 취합 정리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거론되어왔다.

이유수 선생의 「염정(鹽政)」(울산문화 11집, 1995)에 따르면 울산은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염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울산지방에 전해오는 옛말에 “추풍령 이남 사람치고 울산소금 안 먹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이는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이 울산 쪽의 수요를 채워 주었던 것은 물론 영남 일대까지도 능히 그 공급을 하였던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고려사」 권79, 식화지2, 염법, 충선왕 원년에 조사한 도별 염분(鹽盆)과 염호(鹽戶)에 따르면 경상도에는 염분(鹽盆) 174곳, 염호(鹽戶) 195호가 있었다고 하나 울산 지방의 수치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고려의 염정(鹽政)과 관련지어 울산 지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단지 이첨(李詹)이 쓴 「고읍성기」(「신증동국여지승람」 울산군, 고적)를 통해서 풍부하게 소금이 생산되었던 것만은 알 수 있다.

울주는 옛 흥려부(興麗府)이다. 산과 바다가 깊기로는 동남쪽이 제일 장관이다. 본래부터 말하기를 땅이 기름지고 또 물고기와 소금이 많이 나기 때문에 백성 중에 앉아서 부자가 된 자가 여러 집이 있으므로 인해서 군국(軍國)에 쓰이는 비용이 여기서 나는 것이 여러 천금에 이르렀고, 해산물을 바치는 것도 또한 적지 않았다. 대개 이익이 있는 곳에 백성들이 모이고, 백성들이 모여야 세금이 많아지며, 세금이 많으면 국가의 자원되는 것이 간절하고 필요하다.”

위의 기문(記文)을 통해서 물고기와 소금의 생산을 통해서 부자가 된 자가 여러 집 있었고, 군국(軍國)에 쓰이는 비용도 여러 천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료 뿐 아니라 조선 초기에 울산에 염창(鹽倉)을 두고 있었던 것을 본다면 고려 때에도 이곳에 염창(鹽倉)이 있어 소금의 집산(集散)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산팔경」 중의 하나로 ‘염촌담연(鹽村淡煙)’을 꼽았다. 삼산염전에 소금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영좌병영지도」에는 푸른 연기가 그려진 염막 4곳이 보이는데, 그 위치가 현재 삼산동자리이다. 세종조의 문신 유관(柳觀)의 시 「태화루」에 ‘소금 굽는 연기가 먼 곳에서 피어나네.(煮海靑煙起遠洲)’했으니, 조선 초기에 이미 울산의 소금 생산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 때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울산군조에 개운포만호에게 2, 서생포만호에게 2, 염포만호에게 3개의 염분이 소속되었다는 기록으로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울산은 여러가지 소금 가운데서도 ‘달인 소금’ 혹은 ‘졸인 소금’이라는 뜻을 가진 자염(煮鹽)을 생산했다. 자염은 흙에서 일구어내기 때문에 토염(土鹽)이라 불리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서 울산에는 크게 4곳의 염전 지대가 형성돼 있었다. 삼산동 일대의 삼산염전, 돋질산 일대의 돋질염전, 명촌 일대의 명촌·대도염전, 외황강 일대의 마채염전 등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울산읍지(1934)」에 기록된 울산의 4대 염전의 규모나 생산량을 보면 삼산염전이 전체의 3/4을 차지하여 울산 염전 중에서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4대 염전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4대 염전
구분 면적(평) 생산량(근)
울산면(삼산염전) 36,000 216,000
하상면(대도염전) 3,000 4,300
대현면(합도염전) 3,650 13,400
청량면(마채염전) 5,500 27,500
합계 48,150 261,200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염전 분포도

일제강점기 울산지역 염전 분포도

울산 최대의 염전이었던 삼산 염전은 1920~1931년 사이 울산 비행장 등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돋질염전은 한국 비료(현, 롯데정밀화학), 대한알루미늄(현, 울산알루미늄) 공장에 편입돼 1965년 말께 사라졌으며 명촌염전은 현대자동차가 들어서면서, 마채 염전은 울산석유화학공단이 조성되면서 사라졌다.

이 가운데 마채염전과 가까운 소규모 염전인 ‘사평 깔분개’ 에는 지난 1979년 한주(주)가 들어서 국내 유일의 정제염을 생산하면서 소금 생산지의 면면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 참고자료
「고려사」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좌병영지도」
「울산읍지」(1934)
이유수, 1995, 「鹽政」, 「울산문화」 11집, 울산문화원
송수환 역주, 2012, 「태화강에 배 띄우고」, 작가시대대

  •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 담당자 : 박향연
  • 전화번호 : 052-226-5415
  • 최근 업데이트:2021-02-02
TOP
현재페이지 콘텐츠 만족도 조사

홈페이지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