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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의 남구 도로명 길 이야기

신복로

무거동 700~800번지 일대에 있었던 마을로 지금의 현대시장 북쪽 끝 마을이다. 일제시대에는 약 30가구가 살았으나 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기 전에는 약80가구가 살았다. 여기서는 인근 헐수정 마을의 유래를 들려주고자 한다.  현재 울산대학교 후문 앞에 있었던 마을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천년에 가까운 화려와 번영의 극치를 자랑하던 신라도 말기에 이르러 귀족 계급들의 분열과 또한 사치에 젖은 문약(정신적 신체적 나약함)으로 국토는 경주 일대로 줄어들기에 이르렀다. 경순왕도 운수가 다 되어 이미 기울어진 사직을 바로 잡을 기력이나 능력의 소유자가 되지 못하였다. 이때 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장래를 영축산의 문수대성(文殊大聖)의 계시를 받아 결정하기로 결심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 범서 굴화 태화강변 지역)의 영축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사(太和寺)에 이르러 참배하고 길을 나섰는데 중도에서 길가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더니 대왕께서 오실 줄 알고 산으로 인도하여 모시고자 왔다고 했다. 왕은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크게 만족하여 길을 따라갔다. 그러나 삼호(三湖) 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 얼마 가지 아니하여 동자승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왕은 직감에 이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은 이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여 크게 탄식하며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몇번이나 되풀이 하며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이렇게 경순왕이 할 수 없다고 탄신한 곳이 지금의 “헐수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헐수정의 “정”은 한자로 머무를 정(停)으로 추정하여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여겨진다.이 마을에 큰 옹기 공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소주독 공장을 일컫는다. 현재  이곳은 구획정리사업의 시행으로 옛 지형이 사라졌다.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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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자 : 김미래
  • 전화번호 : 052-226-5633
  • 최근 업데이트: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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