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음로/ 야음본로
야음동(也音洞)은 조선 숙종 46년(1720)에도 야음리(也音里)라고 하던 마을이며 영조 41년(1765)에는 야음리(也音里)와 대암리(臺岩里)로, 정조 때는 야음리, 대암리, 도산리(道山里)로 나뉘었다. 그 후 순조 1년(1801)에는 다시 야음리와 도산리로 바뀌었다.고종 31년(1894)에는 야음동, 도산동(途山洞), 송호동(松湖洞)로 바뀌고, 1911년에는 다시 야음동, 도산동으로 변경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를 합하여 야음리(也音里)로 하여 경상남도(慶尙南道) 울산군(蔚山郡) 대현면(大峴面)에 편입했다.1962년 6월 울산시(蔚山市)에 편입되어 동(洞)이 되었다.이 때 야음(也音)이라는 명칭은 마을 뒷산의 모양이 이끼 야(也) 자(字)처럼 생겨서 그 산세에서 ‘이끼 야’자의 소리가 난다 하여 야음(也音)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또 한동안 야암(野岩)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야(野) 자를 파자(罷字)하면 왼편은’리(里) ’자가 되니 밭 전(田) 자와 흙 토(土)자가 되며 오른쪽은 나 여(子)자이다.그러므로 나의 땅과 같이 되는 글자이므로 나의 땅과 밭을 갈며 살아간다는 낭만적인 뜻이 담긴 이름이라 전해온다.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