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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의 남구 도로명 길 이야기

용잠로

용잠동(龍岑洞)은 조선 정조 때에는 용잠리, 고종 31년(1894)에 용잠동이라 하였다가 1911년에는 다시 용잠동으로 바뀌었다. 용잠이라 부르게 된 유래는 용(龍)이 이곳에 잠겼다고 하여 잠길 잠(潛) 자와 용 용(龍)자를 합하여 불러진 이름이다. [용잠본동]에서 웃치미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가면 마을 바로 동북쪽에 [울산항]을 향해 돌출한 지형이 있다. 이 곶(串)을 [이목끝]이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이목’이란 명칭이 생겼는지에 대하여 이곳 출신의 주민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용잠동에서 [웃치미]로 가기 위해 마을 바로 뒷길을 나서면 길 왼쪽에 우뚝한 산봉우리가 하나 솟아 있다. 산세로 보아 이곳은 학(鶴)의 머리에 해당되는 곳이며 [웃치미]로 가는 길을 곧장 더 따라가면 학의 목이 되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본 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枝脈)이 동편 어항 쪽으로 향해 뻗어있는데 이것이 학의 왼쪽 날개이고 [용잠초등학교]가 있던 뒷산에서부터 길게 서쪽으로 뻗어 나간 지산(枝山)이 학의 오른쪽 날개가 되며 [용잠본동]의 북쪽 700여m쯤에 있는 [한개먼당]의 앞산이 이 학의 몸뚱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학은 거대한 몸집으로 동남 앞바다를 향해 웅비하려는 형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에 얽힌 전설을 보면, 옛날 용잠동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줄곧 살아온 이종만씨의 조부가 별세하자 망령의 시신을 장사지내는데 어쩌면 용하게도 용의 머리에 해당되는 곳, 다시 말해서 길지(吉地)인 명당에 모시게 되었다. 그 뒤 망령의 손자가 되는 이종만 씨는 함경남도에서 대동광업이란 금광을 경영하여 글자 그대로 전국에서 첫째가는 갑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고향 땅 인근의 어린이들이 거리가 먼 대현면 [고사리]에 있는 [대현보통학교]에 다니는 것을 딱하게 여겨 [용잠공립초등학교]를 지어 국가에 기증하였고 고향에 올 때마다 학교에 들러 학생들에게 면학을 격려하는 훈시도 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용연동에 살았던 정 모 씨라는 사람도 나이 사십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선친의 묘를 학의 머리인 이곳 명당에 모시고 나서는 그 뒤 천석지기를 했다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실화도 전해온다.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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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업데이트: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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