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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개운포 좌수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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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개운포 좌수영성(울산광역시 기념물)는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으로 운영된 곳으로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423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곳으로 외황강(外湟江)변의 해발 50m정도의 구릉과 평지를 포함하는 포곡식성이다.

  • 개운포성 위치도
  • 1967년 항공사진

개운포에 수군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태종 7년(1407)의 「개운포 병선을 거느리고 삼포‥」이다. 개운포에 만호진이 있었다는 기록은 태종 11년(1411)의 「‥개운포만호 조민로(曺敏老)가 바다의 적을 막을 만한 재질을 갖추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의 직첩(職帖)을 박탈한다.‥」라는 기사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세종 7년(1425)에도 개운포만호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종 24년(1493)에 「경상좌수영(慶尙左道水營)이 본래 동래현 부산포(富山浦)에 있었는데 국가의 주장이 왜인과 혼처하고 있어 거처로서 마땅하지 아니하여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라는 연유로 좌수영을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개운포에서 동래 해운포[남촌]로 좌수영이 이전된 시기에 대하여 중종 39년(1544)과 선조 25년(1592)으로 양분되는데, 일반적으로 중종 39년(1544)로 보고 있다.

개운포 좌수영성의 평면모양은 남북으로 치우친 타원형을 띠고 있으며 성지의 남서쪽은 바다로 돌출되어 수심 3m이내인 외황강과 접하고 있다. 둘레 1,264m, 면적 102,919㎡, 체성은 최대 폭 4.0~4.7m, 최대 높이 2.4m 정도이다.

개운포성 평면도

  • 개운포성 남쪽 석성부
  • 개운포성 토성부와 마른 해자[隍]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 의하여 2002년과 2005년 2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되었다. 1차 조사에서 동문지, 서문지, 남쪽 성벽 2곳이 조사되었고, 2차 조사에서 추정 남문지와 북문지를 조사하였다.

동문지는 성지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동쪽 구릉에 위치하며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이 협축으로 축조되어 있다. 문지 북쪽의 체성은 초축 시 폭 3m, 증축시 4m 정도다. 문지의 체성은 지표를 정지한 후에 판석과 할석을 교대로 쌓아 기초를 보강한 후에 기단석을 축조하였으며 체성 내부는 막돌을 채워 넣어 완성하였다.

추정 서문지는 성지 내부에서 외황강으로 연결되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체성은 2회 이상 증축 및 개축되었는데 최초의 체성은 폭 3m, 잔존높이 2.6m 정도며, 증축 체성은 폭 5m, 잔존높이 3.6m이다. 체성 외벽은 암반바닥에 납작한 할석을 보도블록상으로 깔고 그 위에 지대석을 놓고 기단석 사이의 빈 공간에는 작은 할석을 끼워 넣어 외벽을 마무리 하였다.

내벽은 30cm 정도의 할석으로 쌓고 그 상부는 암반토와 부식토를 내탁으로 쌓아 올려 내벽을 마무리 하였다. 문지는 초축된 체성에서만 확인되며 체성에는 3.2m 정도로 개구부가 만들어져 있다. 추정 서문지는 개방식 수구와 유사한 수문시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추정 남문지는 외황강과 연하는 곳으로서 성지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해당하는데 체성벽의 외벽은 판석상의 지대석 상부에 있는 기단석 끝에서 20cm정도 안쪽에 1m 이상 크기의 대석으로 세워쌓기를 하였는데 2단정도 확인된다. 외벽에서 4.8m 안쪽으로는 20~30cm내외의 사람머리 크기의 할석이 내벽 까지 경사지게 뒷채움 되어 있다. 잔존높이 1.3m 규모로 외벽 바깥으로는 1.2m 폭으로 보도상의 판석상으로 지대석이 축조되어 있다.

체성벽의 경우 추정 남문지의 동쪽 성벽은 먼저 성벽을 축조할 부분을 지표에서 2.2m아래의 생토층까지 비스듬히 굴착 조정한 면에 20~40cm크기의 납작한 자연석을 폭 6.2m 정도에 한 벌 깔아 지대석을 설치하였다. 내벽은 지대석의 끝으로부터 0.4~1.2m 안쪽에 30~40cm크기의 할석으로 높이 80cm까지 쌓았으며 그 외곽으로 4.8~5m 지점에 3~4단의 성벽석을 세워쌓기와 눕혀쌓기 방법으로 축조한 후 할석으로 뒷채움한 상태이다.

뒷채움석은 외벽에서 약 2.5m지점에서 단의 흔적이 관찰된다. 뒷채움석 상부로는 황갈색과 풍화토를 교대로 4차례 정도 판축하여 내탁하였다. 그리고 내탁된 흑갈색부식토가 외벽석의 1.5m 안쪽에서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어 개보수와 관련된 흔적으로 보고 있다.

북문지의 경우 개구부가 약 2m정도 서쪽 성벽쪽으로 난 반원형 편문식 옹성이 조사되었는데 기존 옹성의 외측부에 약 1.5m 정도 확장하여 증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자(垓子)는 성벽 외곽 전체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사된 동편의 해자는 자연경사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깊이 6m이상으로 축조하였으며, 서편의 해자는 동편보다 얕으나 체성에서 약 10~15m이상 떨어져 폭 10m정도 단면「V」자상으로 양호하게 남아 있다.

개운포성 남쪽 체성 발굴

한편, 추정 남문지 부근의 면석에서 「‥南村‥乙(?)未四二九‥」가, 북문지 서편의 면석에서 「‥南北村‥」이 각자된 축성관련 명문석이 확인되어 축성시점과 동원된 마을 및 거민(居民)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데, 북촌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촌은 좌수영이 있었던 동래[부산] 해운포의 지명일 것으로 보이고, 사이구(四二九)는 성을 축조한 날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卍」,「甲」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와편이 있으며 특히 「卍」이 새겨진 명문와가 많다. 동문지 근처에서 전돌과 「밀양장흥고(密陽長興庫)」명 분청사기편이 수습되었고, 서문지에서는 백자 굽의 안쪽에 「上」,「水」자가 새겨진 명문백자가 수습되었다.

  • 개운포성 동문지 발굴
  • 개운포성 추정 서문지 발굴
  • 개운포성 북문지 발굴
  • 개운포성 현황

※ 참고자료 : 울산의 관방유적(울산광역시, 2013.10)

  •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 담당자 : 정성연
  • 전화번호 : 052-226-5413
  • 최근 업데이트: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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