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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의 남구 도로명 길 이야기

이휴정길3

이 때 또 백만 원군이 된 한 분이 있었으니 괴천 박창우공이시다. 괴천공은 이휴정부군과 더불어 사마시(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에 동시에 같이 급제한 분이며 본래 영천 출신으로 밀양박씨 밀직부원군의 후손으로 도승지 청풍당선생(淸風堂先生) 휘 영손(英孫, 남의손자 높게 부르는 말)의 후예요 장사랑(將仕郞, 조선시대 종9품 휘호) 휘 현(晛) 호 국담공(菊潭公)의 아들이시다.
이휴정 부군의 권유에 따라 1664년 남하하여 울산에 정착하였다. 이를 계기로 괴천공이 울산으로 이사한 후 두 분은 수시로 회합하여 태화강과 이휴정 등지에서 시담(詩談)을 주고받았으며 특히 구강서원(鷗江書院, 경북 경주의 익제 이제현의 영정과 위패 모신 서원)을 건립하여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괴천공은 두 분의 관계를 이성지골육(異姓之骨肉,성은 다르나 같은 혈육)으로 표현하며 생전에 못다 나눈 정을 후손들이 이어 가도록 유훈을 남겼으며 이 같은 인연으로 345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밀양박씨 송정문중(密陽朴氏松亭門中)과 학성이씨 월진문중(鶴城李氏 越津門中)은 강의계(講誼契)를 조직하여 연연세세(年年歲歲) 우의를 다져 오고 있으며 양공(兩公)의 묘제 참배 등으로 고을의 미담이 되고 있다.
이동영 부군의 유집으로 이휴정문집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문집에는 가훈격인 거가요어(居家要語)가 21조목으로 구성되어 있어 항상 흐트러진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내용의 큰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후손들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하기에 월진문중후손들은 이 곳 이휴정에 대해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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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업데이트: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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