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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이의 남구 도로명 길 이야기

이휴정길2

성균생원 이동영(李東英) 부군(府君)의 본관은 학성(鶴城)이요, 자(字)는 화백(華伯)이고, 호(號)는 이휴정(二休亭)이며 조선 중기인 17세기 사람으로 이곳에 세워진 [이휴정공이동영와비(二休亭公李東英臥碑)]는 이휴정의 원래 주인이다.
이휴정 부군의 생애에는 세 차례의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그 첫째는 암행어사 박세연(朴世衍)과의 만남이고, 둘째 허목 미수선생(許穆 眉瘦先生)을 모신 일이며, 다음은 괴천 박창우공(槐泉 朴昌宇公)과의 인연이다.부군이 문장가로서 입지를 높이던 무렵 조부 난은 이한남공이 월진촌에서 영남의 학맥을 이어 가면서 호연지기를 키웠던 선례를 본받기 위해 1662년에 이휴정 자리에 이미정(二美亭)을 지어 기거하고 있던 166년 어느 날, 길을 지나던 암행어사 박세연이 이정자를 보고 이르기를 [산, 산이여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이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고, 물, 물이여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이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도다.](山乎山乎 美則美矣 可以休矣 水哉水哉 美則美矣 可以休矣)라고 시를 지은 것을 따라 1666년에 이미정을 이휴정이라 고치고 부군의 호를 또한 이휴정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허미수 선생과의 만남이다. 부군은 바로 당대 동방의 제일인자란 찬사를 받았던 허목 미수선생 문하에서 괴천공과 함께 수학하며 깨우침을 이어받았으며 미수선생의 가르침으로 현종7년 병오(丙午 : 1666)에 생원 급제했던 것이다. 성균생원 이동영은 그 어려운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성균관에서 수학한 후 낙향하여 집안을 돌보며 울산지역에서 유풍(儒風)을 일으키고자 진력을 다하였다.다음 편에 계속……
* 참고문헌 : 윤성태,울산남구지명사,울산남구문화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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