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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황강 소개 역사·문화 소재 제2회 외황강 문학상

외황강 역사문화권

사람, 고래, 철새가 함께 꿈꾸던 도시 매력 넘치는 울산남구 여행

역사・문화 소재

외황강의 9가지 보물

외황강 물줄기를 따라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개운포 경상좌수영성

    개운포 경상좌수영성

    조선 수군의 결기와 호국의 혼이 서린 요새

    이름부터 '구름이 열리는 포구(개운포)'라는 전설을 품고 있습니다. 1459년부터 약 85년 동안 경상도 동해안 방어의 총사령부 역할을 했습니다. 원형이 매우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축성 기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처용암

    처용암(處容岩)

    관용의 정신과 신라의 신비가 깃든 바위

    신라 헌강왕이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을 만난 곳입니다. 거대한 공단 불빛 아래 고요히 떠 있는 이 바위는 천 년 전설과 현대 산업이 극적으로 공존하는 울산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 선수마을

    선수(船首)마을

    배를 짓던 장인들의 숨결

    조선 수군의 전함과 통신사의 배를 만들던 조선업의 뿌리입니다. 산업단지 조성으로 마을은 사라졌지만, 이곳의 장인 정신은 오늘날 세계 1위 조선 도시 울산의 저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성암동 패총

    성암동 패총

    고래잡이의 기원을 품은 타임캡슐

    선사시대 생활 쓰레기장이자 보물창고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는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이 상상이 아닌 실제 삶이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 마채염전

    마채염전

    하얀 소금꽃이 피어나던 땀의 현장

    산업화 이전,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하얀 젖줄이었습니다. 지금은 공장 부지로 변해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염부들의 치열했던 삶과 땀방울을 기억해야 할 소중한 공간입니다.

  • 망해사

    망해사(望海寺)

    바다를 굽어보며 품은 천 년의 그리움

    처용 설화와 관련된 천년 고찰입니다. 동자승을 사랑해 파랑새가 된 '승아 전설'의 애틋함이 서려 있으며, 산사에서 내려다보는 공단 야경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 용연

    용연(龍淵)

    용의 전설이 산업의 동력으로 승화된 곳

    외황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류 지점으로, 예로부터 용왕이 드나드는 신성한 길목이라 불렸습니다. 현재는 매립되어 발전소가 들어섰지만, 나라를 지키던 용의 기운은 이제 산업 수도 울산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 가리봉수대

    가리봉수대

    국경의 끝에서 바다를 지키던 눈

    왜구의 침입을 가장 먼저 알리던 최전방 감시 초소였습니다. 산업화로 산이 깎여나가며 사라졌지만, 나라를 지키던 고독한 사명감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 세죽유적

    세죽유적

    최초의 마을과 공동체의 시작

    울산만 일대에서 사람들이 비로소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을 보여주는 청동기 유적입니다. 화려한 공장 아래 잠들어 있는 문명의 뿌리입니다.

개운포 경상좌수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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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포 경상좌수영성

조선 수군의 결기와 호국의 혼이 서린 요새

「개운포 경상좌수영성」은 이름부터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신라 헌강왕이 처용을 만나자 구름이 걷혔다는 ‘개운포(開雲浦)’의 전설과, 조선시대 경상도 동쪽 바다를 지키는 해군 본부인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의 성곽이라는 의미가 합쳐진 명칭입니다.

지리적으로 울산 남구 성암동, 외황강이 동해의 울산만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과 바다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어 적의 침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역사적으로 조선 전기(1459년~1544년) 약 85년 동안 부산을 대신해 경상도 동해안 방어의 총사령부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수군절도사가 주둔하며 왜구를 막아내던 국방의 심장부였습니다.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원형입니다. 도시화로 훼손된 다른 지역의 수영성과 달리, 성벽과 해자, 배를 만들던 선소 유적이 생생하게 남아 조선 전기 축성 기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가지정문화유산(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처용암(處容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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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암

관용의 정신과 신라의 신비가 깃든 바위

「처용암」은 신라 설화의 주인공인 ‘처용(處容)’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위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리적으로 울산 남구 황성동, 외황강 물줄기가 울산만 바다와 만나는 하구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바위섬입니다. 육지인 개운포 성지에서 불과 10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 설화의 발상지입니다.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서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을 만났으며, 훗날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전염병신)을 춤과 노래로 감동시켜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곳입니다.

현재 처용암 주변은 온산국가산업단지의 거대한 공장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삭막할 수 있는 공단의 화려한 불빛 아래 고요히 떠 있는 이 바위는, 천 년 전 신라의 신비로운 전설과 현대 산업 수도 울산의 현재가 한 공간에 어우러진 상징적인 명소입니다.

선수(船首)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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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을

배를 짓던 장인들의 숨결

「선수마을」은 그 이름에서부터 배를 만드는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배의 머리 부분인 ‘선수(船首)’가 닿는 곳이라 하여, 혹은 관청에서 배를 만드는 ‘선소(船所)’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어느 쪽이든 이곳이 조선업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합니다.

지리적으로 울산 남구 성암동, 개운포 성곽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외황강 하구와 인접하여 배를 띄우고 수리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마을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수군들이 타고 싸울 전선(전함)을 건조하고 정비하던 군수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일본으로 향하던 조선 통신사의 배를 만들거나 점검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배후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수마을은 1970년대 이후 국가 산업단지 조성으로 마을은 철거되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배를 만들던 장인 정신은 오늘날 세계 1위 조선 도시 울산의 저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성암동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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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동 패총

고래잡이의 기원을 품은 타임캡슐

「성암동 패총」은 말 그대로 울산 남구 성암동에서 발견된 거대한 조개무덤(패총)을 뜻합니다. 선사시대 조상들이 조개를 먹고 버린 껍데기가 수천 년 동안 쌓여 만들어진 언덕으로,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생활 유적입니다.

지리적으로 외황강 하류가 울산만 바다와 만나는 성암동의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과 바다의 풍부한 먹거리를 동시에 구할 수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았던 천혜의 명당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삼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생활 쓰레기와 도구들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 골각기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와 울산 역사의 시작점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특징으로는 ‘고래 뼈’의 출토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와 포경 도구들은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잡이 그림이 상상이 아니라, 선사시대 울산 사람들의 치열한 실제 삶이었음을 증명하는 타임캡슐과도 같습니다.

마채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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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채염전

하얀 소금꽃이 피어나던 땀의 현장

「마채염전」은 소금을 굽는 가마나 시설을 뜻하는 옛말 ‘마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하얀 소금을 생산하던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울산 남구 부곡동과 용연동, 그리고 울주군 청량면 일대의 넓은 해안가 갯벌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드나들기 좋고 햇볕이 잘 드는 이곳은 천일염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장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반 울산이 공업 도시로 개발되기 전까지 성행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질 좋은 소금은 울산뿐만 아니라 인근 내륙 지방으로 팔려나가 서민들의 밥상을 책임지고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하얀 젖줄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은 1960년대 이후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면서 염전은 매립되어 공장 부지로 변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땀 흘리며 소금을 거두던 염부들의 치열했던 삶과 산업화 이전 울산의 소박한 풍경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망해사(望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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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사

바다를 굽어보며 품은 천 년의 그리움

「망해사」는 이름 그대로 ‘멀리 바다를 굽어보는 절(望海寺)’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라 헌강왕이 처용을 만나고 돌아가던 중, 짙었던 구름이 걷히고 날이 맑아지자 동해 용왕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창건 유래가 전해집니다.

지리적으로 울산 울주군 청량읍, 영축산 중턱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울산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명승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 설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천 년 고찰입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 석조 예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보물 제173호 ‘망해사지 승탑’이 남아 있어 이곳의 깊은 역사를 증명합니다.

동자승을 짝사랑하다 파랑새가 되었다는 '승아 전설'의 로맨틱한 스토리텔링이 깃들어 있으며, 고즈넉한 산사에서 내려다보는 울산항과 공단의 역동적인 야경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용연(龍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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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용의 전설이 산업의 동력으로 승화된 곳

「용연」은 '용이 사는 깊은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울산 남구 용연동(龍淵洞)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지리적으로 외황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류 지점 인근(현재의 용연동 발전소 부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신비로운 물길로, 옛사람들은 이곳이 바다 용궁으로 통하는 입구라고 믿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대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를 지을 때,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물길과 연결된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또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1970년대 공업단지 조성과 매립 공사로 인해 용연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현재는 거대한 발전소와 공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비록 푸른 물결은 볼 수 없지만, 용의 기운이 서려 있던 이곳은 이제 대한민국 산업의 동력을 뿜어내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변모하여 울산의 번영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리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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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수대

국경의 끝에서 바다를 지키던 눈

「가리봉수대」는 울산 남구 황성동에 있던 옛 ‘가리산’의 정상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으로, 나라의 위급 상황을 연기와 횃불로 알리던 조선시대 군사 통신 시설입니다.

지리적으로 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안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통해 쳐들어오는 적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국방의 요충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연변봉수(沿邊烽燧)’로서,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고 그 정보를 북쪽의 천내 봉수대로 전달하는 최전방 감시 초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며 울산의 안보를 책임졌습니다.

1970년대 국가 공업 단지 조성 과정에서 산이 깎여나가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비록 실체는 사라졌지만, 홀로 밤바다를 지키던 병사들의 고독한 사명감과 국가 안보의 최일선이었던 울산의 역사를 증명하는 상징적인 기억의 공간입니다.

세죽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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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죽유적

최초의 마을과 공동체의 시작

「세죽유적」은 유적이 발견된 울산 남구 황성동의 옛 자연 마을 이름인 ‘세죽(細竹)’에서 따온 명칭입니다.

지리적으로 외황강 하류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강과 가까워 물을 구하기 쉽고 땅이 비옥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집단 거주지입니다. 1990년대 말 발굴 조사를 통해 수십 기의 집터와 빗살무늬토기, 돌도끼 등 수많은 생활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울산만 일대에서 사람들이 흩어져 살지 않고, 비로소 **'마을'**을 이루어 정착 생활을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현재 유적지 터에는 거대한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산업 도시의 지하에 인류 문명의 시작점인 최초의 공동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울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깊은 시간의 층위를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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